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러 가면서 별 기대가 없었습니다. 주변에서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반쯤 의무감으로 극장에 앉았거든요.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저는 애니메이션으로도 감동을 줄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2017년작 , 처음 보는 사람을 이렇게까지 그리워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줄거리와 시간차 반전 — 혜성이 재앙이 되는 순간이야기는 천 년 만에 지구에 가까워진다는 혜성이 화제가 된 일본에서 시작합니다. 깊은 산골 마을 이토모리에 사는 여고생 미츠하는 신사 집안의 낡은 풍습과 좁은 마을의 시선에 지쳐, 다음 생에는 도쿄의 잘생긴 남자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정말로 어느 날 아침, 미츠하는 도쿄에 사는 남고생 타키의 몸으로 눈..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말에 잔인한 장면 각오하고 들어갔는데, 정작 영화가 끝나고 제 머릿속에 남은 건 폭력이 아니라 권력자들이 나누는 말 한마디 한마디였습니다. 2015년 개봉한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은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정치인·재벌·언론이 어떻게 손을 잡고 대한민국을 움직이는지를 세 남자의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입니다.세 남자가 만들어낸 권력 카르텔의 민낯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악인이 따로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정치깡패 안상구, 검사 우장훈, 논설주간 이강희. 이 세 인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권력의 톱니바퀴 안에 맞물려 있고, 어느 쪽이 가해자이고 어느 쪽이 피해자인지 경계가 흐릿합니다.안상구는 유력 대선 후보 장필우와 미래자동차 ..
2017년 2월 28일,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로건은 슈퍼히어로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에 오른 작품입니다. 제가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히어로 영화가 아카데미 후보라니 의아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쇠퇴 — 늙고 병든 울버린이 낯설었던 이유영화의 배경은 2029년입니다. 뮤턴트, 즉 돌연변이 초능력자가 거의 사라진 세상입니다. 쉽게 말해 25년 동안 새로운 돌연변이가 단 한 명도 태어나지 않은 세계가 배경입니다. 그 세계에서 로건은 리무진 기사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첫 장면부터 제가 받은 충격은 꽤 컸습니다. 차 바퀴를 훔치려는 불량배들과 맞서는 로건의 클로가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습니다. 여기서 클로란 로건의 ..
마블 영화라는데 아이언맨도 캡틴 아메리카도 없다고 해서 솔직히 반신반의하며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말하는 너구리와 걸어 다니는 나무가 주인공이라는 말을 듣고 잠깐 진지하게 환불을 고민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영화는 제가 마블 전체 필모그래피에서 손에 꼽을 만큼 아끼는 작품이 됐습니다. 처음 끌리지 않았던 영화가 왜 이렇게 오래 기억에 남는지, 그 이유를 직접 경험한 순서대로 풀어보겠습니다.오프닝 3분이 영화 전체를 결정했다히어로 영화의 오프닝이라고 하면 보통 화려한 전투나 능력 시연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1988년 지구의 한 병원 복도에서 시작합니다. 어린 피터 퀼이 병상에 누운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장면인데, 제가 직접 봤을 때 시작 3분 만에 ..
역사 교과서에서 광주를 배울 때, 저는 그 날들이 얼마나 가깝고 실제적인 이야기인지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2017년 여름, 극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그 무게가 처음으로 피부에 닿았습니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카메라에 담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광주까지 태워다 준 택시기사 김사복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평범한 소시민의 눈으로 바라본 광주일반적으로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은 처음부터 무겁고 비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직접 극장에서 확인해 보니 전혀 달랐습니다. 영화는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흥얼거리며 서울 시내를 달리는 택시기사 만섭의 경쾌한 일상으로 문을 엽니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열한 살 딸 은정을 홀로 키..
2007년 예고편만 보고 극장에 갔을 때, 저는 당연히 화끈한 좀비 액션 영화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건 괴물과의 격투가 아니라, 텅 빈 뉴욕에서 마네킹에게 말을 거는 한 남자의 등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의 진짜 장르는 고독에 관한 드라마에 훨씬 가깝습니다.텅 빈 뉴욕, 그 외로움이 진짜 공포였다영화는 희망찬 뉴스 인터뷰로 시작합니다. 한 과학자가 바이러스를 이용해 암을 완치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화면이 바뀌고 3년 뒤, 뉴욕은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폐허가 되어 있습니다.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로 풀이 자라고, 버려진 차들 틈으로 사슴 떼가 뛰어다니는 맨해튼을 빨간 머스탱으로 질주하는 로버..
평범한 시골 소녀가 사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면 어떨까요. 2018년 개봉한 박훈정 감독의 영화 는 저에게 그런 질문을 남긴 작품입니다. 신세계를 만든 감독의 신작이라는 말 한마디만 듣고 아무 정보 없이 극장에 들어갔다가, 영화가 끝나고 나올 때는 휴대폰으로 김다미를 검색하고 있었습니다.스토리 — 10년을 기다린 반전의 설계도영화는 비밀 연구 시설에서 시작합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피험체의 처리 명령이 내려지고, 혼란 속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소녀 한 명이 탈출합니다. 여기서 피험체란 연구 목적으로 신체 개조 및 능력 강화 실험을 받은 인간 대상자를 뜻합니다. 그 소녀는 이후 외딴 목장을 운영하는 노부부에게 발견되어 구자윤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10년 뒤의 자윤은 욕도 거침없이 주고..
인도 영화는 갑자기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세 얼간이도 몇 년째 목록에만 올려두고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강력한 추천에 못 이겨 겨우 틀었다가, 세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이 끝났을 때 저는 왜 이제야 봤을까 후회하며 입으로 알 이즈 웰을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성적과 경쟁에 지친 사람에게 왜 특효약인지, 제가 직접 느낀 이유를 정리해 보겠습니다.줄거리와 명장면 —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순간들2009년 인도에서 개봉해 당시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의 세 얼간이는 우리나라에 2011년 8월에 정식 개봉했습니다. 영화는 사진작가 파르한이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쓰러진 척 연기까지 해가며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졸업 후 연락이 끊긴..
2018년 1월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2위로 출발했지만 입소문만으로 일주일 만에 1위를 탈환하고, 최종 342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있습니다. 저는 예고편을 보고 "이병헌 망가지는 코미디겠구나"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갔다가, 후반부에 코를 훌쩍이며 나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줄거리 — 예고편이 감춘 이야기의 진짜 무게주인공 조하(이병헌)는 한때 WBC 웰터급 동양 챔피언까지 올랐던 복서입니다. 여기서 WBC 웰터급이란 세계복싱협의회(World Boxing Council) 산하 체급 중 하나로, 국제무대에서 인정받는 공식 타이틀을 뜻합니다. 챔피언 벨트까지 거머쥐었던 사람이 지금은 전단지를 돌리고 스파링 파트너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처지라는 설정이, 영화 초반부터 조하라는 인물에 묘한 연민..
2019년 개봉 7일 만에 손익분기점 350만을 돌파하고 최종 942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있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큰 기대 없이 봤다가, 극장을 나오면서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고 눈가가 젖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가벼운 여름 코미디라고 생각했던 가 왜 그해 여름 극장가를 완전히 뒤집어놓았는지, 제가 직접 겪었던 반응과 수치를 함께 놓고 짚어보겠습니다.개봉 성적: 예상 밖의 흥행이 만들어진 맥락2019년 7월 31일 개봉한 는 장편 데뷔작을 내놓은 이상근 감독과, 주연 배우 조정석·윤아의 조합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때 저는 B급 코미디 정도겠거니 하고 큰 기대를 품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영화 전문 분석 지표인 손익분기점이 350만 명이었는데, 이 수치를 단 일주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