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2019년 개봉 7일 만에 손익분기점 350만을 돌파하고 최종 942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있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큰 기대 없이 봤다가, 극장을 나오면서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고 눈가가 젖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가벼운 여름 코미디라고 생각했던 <엑시트>가 왜 그해 여름 극장가를 완전히 뒤집어놓았는지, 제가 직접 겪었던 반응과 수치를 함께 놓고 짚어보겠습니다.
개봉 성적: 예상 밖의 흥행이 만들어진 맥락
2019년 7월 31일 개봉한 <엑시트>는 장편 데뷔작을 내놓은 이상근 감독과, 주연 배우 조정석·윤아의 조합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때 저는 B급 코미디 정도겠거니 하고 큰 기대를 품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영화 전문 분석 지표인 손익분기점이 350만 명이었는데, 이 수치를 단 일주일 만에 넘겨버렸습니다.
최종 누적 관객 수는 942만 명으로, 천만 관객에 아슬아슬하게 미치지 못했지만 그해 여름 극장가에서 가장 오래 상영관을 지킨 작품 중 하나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제가 기억하는 건, 개봉 첫 주 평일 낮 시간대임에도 극장 좌석이 거의 차 있었다는 점입니다. 입소문의 속도가 유난히 빠른 작품이었습니다.
이상근 감독은 이 작품으로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과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을 동시에 수상했습니다. 장편 데뷔작으로 두 개의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각색 능력을 인정받은 것은 흔치 않은 사례입니다. 흥행 수치보다 이 부분이 저에게는 더 의미 있게 느껴졌습니다. 숫자는 우연이 만들 수 있어도, 각본의 완성도는 쉽게 흉내 낼 수 없으니까요.
- 개봉일: 2019년 7월 31일
- 손익분기점(BEP): 350만 명 — 개봉 7일 만에 돌파
- 최종 누적 관객: 942만 명 (그해 여름 극장가 1위)
- 이상근 감독 수상: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
재난 연출: 일상 공간을 생존 도구로 바꾸는 방식
<엑시트>의 재난 설정은 화학 테러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합니다. 영화는 이 중 유독가스 확산 상황을 도심 한복판에 배치했는데, 제가 이 설정에서 감탄했던 건 연출의 물리적 정확성이었습니다.
가스가 바닥부터 차오른다는 장면은 실제로 대부분의 독성 기체가 공기보다 무거운 성질을 가진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쓰레기봉투와 고무장갑, 테이프로 만든 간이 방호복, 방독면 정화통의 교체 타이밍을 스톱워치로 재는 장면까지, 세부 설정이 허술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가장 압도한 장면은 건물 외벽 클라이밍 시퀀스였습니다. 이 장면에서 조정석은 대역 없이 직접 외벽을 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안전줄을 풀고 장식용 벽돌 홀드 하나에 몸을 맡기는 순간, 저도 모르게 팔걸이를 꽉 쥐고 숨을 참고 있었습니다. 극장 전체가 조용해지던 그 감각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을 따라 가스 속 지하철역을 이동하는 장면, 헬스장 아령을 로프 앵커로 활용해 건물 사이를 건너는 장면, 고깃집 환풍기로 가스가 역류하는 장면까지 —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공간과 사물들이 생존 도구로 전환되는 이 연출 방식은 한국 재난 영화에서 보기 드문 방식이었습니다. 오락성과 현실감을 동시에 잡은 드문 사례로 기억합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캐릭터 분석: 백수 청년이 영웅이 되는 서사 구조
용남이라는 캐릭터가 특별하게 느껴진 건 그가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 시절 산악 동아리 에이스였지만 졸업 후 수년째 취업에 실패하며 백수로 지내는 청년. 놀이터 철봉 하나만큼은 기막히게 하는데 그 때문에 조카에게 창피한 삼촌 취급을 받고, 선배와 술을 마시며 "우리 인생이 재난"이라고 자조하는 모습에서 저는 괜히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취업 준비를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명절 풍경, 친척의 무심한 한마디가 얼마나 아픈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용남은 실생활에서는 쓸모없다는 낙인이 찍혀 있지만, 재난 상황에서 자신의 클라이밍 능력이 유일한 탈출 수단이 된다는 역설적 반전이 핵심입니다. 대학 시절 실패했던 바로 그 동작을 극한의 상황에서 해내는 장면은, 제 경험상 이 영화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조밀한 순간이었습니다.
의주 역시 단순한 조력자 구도에 머물지 않습니다. 헬기 정원이 차 옥상에 혼자 남겨졌을 때 등을 돌리고 몰래 우는 장면이 저에게는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부점장이라서 손님을 두고 먼저 갈 수 없다고 남았지만, 그 의연함 뒤에 얼마나 두렵고 살고 싶었을지가 그 뒷모습 하나로 전달됐습니다. 거창한 희생정신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두려움 속에서도 옳은 선택을 하는 과정, 그게 이 영화가 억지 신파를 피해 가는 방법이었다고 봅니다.
결론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저는 웃기게도 우리 동네 건물 옥상 문이 열려 있는지, 비상구가 어디에 있는지 올려다보게 됐습니다. 재난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행동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오락을 넘어 실생활의 감각을 건드렸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엑시트>는 억지 신파 없이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선의가 모여 누군가를 살려내는 이야기를 보여줬습니다. 백수라서, 사회 초년생이라서 매일이 재난 같았던 두 청년이 진짜 재난 앞에서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서사는, 단순한 오락 영화가 가질 수 없는 무게감을 갖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웃고 울고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도 따뜻한 여운이 남는 한국 재난 영화는 흔하지 않습니다. 아직 못 보셨다면, 이번 주말 충분히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