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기분이 바닥을 치는 날, 유독 찾게 되는 노래가 하나씩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게 'The Greatest Show'였습니다. 자존감이 무너질 때마다 플레이리스트 맨 위에 올려두고 반복 재생하는 곡인데, 이 노래가 담긴 영화 《위대한 쇼맨》을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 긍정적인 충격과 감동을 받았었습니다. 개봉 당시 극장에서만 5번을 봤고, 그 이후로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 자체에 완전히 빠져들게 됐습니다.
OST 한 곡이 장르 입문을 바꿔버렸다
《위대한 쇼맨》의 OST는 팝 프로듀서 Benj Pasek과 Justin Paul이 제작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라라랜드》의 음악으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팀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뮤지컬 영화 음악 분야에서 가장 신뢰받는 이름들이 붙은 프로젝트라고 보면 됩니다.
제가 처음 극장 스크린 앞에 앉아서 'Never Enough'를 들었을 때의 감각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이게 영화인가, 아니면 실제 뮤지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이브 퍼포먼스(Live Performance)란 실제 공연장에서 연주와 노래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형식을 뜻하는데, 이 영화는 그 현장감을 스크린 안에서 고스란히 구현했습니다. 그 경험이 계기가 되어 저는 이후로 《레미제라블》, 《맘마미아》 등 뮤지컬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The Greatest Show'는 단순한 오프닝넘버가 아닙니다. 이 곡은 소외된 사람들, 이른바 프릭쇼(Freak Show)의 출연자들이 무대 위에서 당당함을 되찾는 장면을 배경으로 흐릅니다. 여기서 프릭쇼란 19세기 서커스 문화에서 신체적 특이점을 가진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전시하던 흥행 방식을 말합니다. 현대의 시각으로는 윤리적 논란이 큰 형태지만, 영화는 이를 자존감과 공동체 회복의 서사로 재해석했습니다.
자존감(Self-esteem)이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지표입니다. 저도 자존감이 바닥일 때 이 노래를 반복 재생했고, 그때마다 실제로 마음이 조금씩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사가 직접적인 위로를 건네는 방식이 아니라, 무대 위 군중의 열기 속으로 청자를 끌어당기는 방식이어서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Never Enough' — 켄다 렌슬러(Loren Allred)의 목소리로 녹음된 곡으로, 극장 사운드로 들을 때 압도감이 특히 강합니다.
- 'This Is Me' —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곡으로, 자기 수용(Self-acceptance)의 메시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 'The Greatest Show' — 영화의 오프닝이자 클로징 넘버. 반복 청취율이 가장 높은 트랙이라고 자신합니다.
- 'Rewrite the Stars' — 잭 애프론과 젠다야의 케미가 담긴 곡으로, 공중 곡예 장면과의 싱크로율이 인상적입니다.
PT 바넘, 미화와 영화 사이에서 균형 잡기
영화가 좋아질수록 실존 인물인 P.T. 바넘(Phineas Taylor Barnum)에 대해 찾아보게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찾아보고 나서 한동안 영화를 다시 켜기가 조금 꺼려졌습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바넘은 출연자들을 착취하고, 거짓 홍보로 대중을 기만한 흥행업자로 평가받습니다. 스미소니언 매거진을 비롯한 여러 역사 기록 매체에서도 그를 사기와 선정주의의 아이콘으로 묘사합니다(출처: Smithsonian Magazine).
영화적 미화(Glorification)란 실존 인물이나 사건의 어두운 면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제거하여 긍정적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서사 기법을 말합니다. 《위대한 쇼맨》은 이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그 점은 분명히 비판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느 순간 시각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실존 인물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영화가 만들어낸 서사적 공간은 별개로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건 타협이나 합리화가 아니라, 허구(Fiction)와 역사(History)를 분리해서 소비하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의 문제라고 보게 된 것입니다.
* 미디어 리터러시란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영화를 보면서 동시에 "이건 각색된 이야기"라는 인식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유튜브에서 제작 과정 영상을 찾다가 리허설 비하인드 장면을 보게 됐는데, 휴 잭맨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봤을 때 그 장면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배우 본인이 그 음악에 진심으로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감동이 스크린을 통해 그대로 전달됐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T 바넘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와 별개로, 그 리허설 현장에서의 감정은 거짓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영화 미화 논란을 알고 나서 흥미가 줄었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 논란 덕분에 영화를 더 입체적으로 보게 됐습니다. 역사적 사실은 따로 알고, 영화는 영화로 즐기는 것,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 배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위대한 쇼맨 OST에서 'Never Enough'를 실제로 부른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A. 맞습니다. 영화에서 레베카 퍼거슨이 립싱크로 연기하고, 실제 보컬은 켄다 렌슬러(Loren Allred)가 담당했습니다. 처음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오히려 두 사람 모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의 표정 연기와 성악가 수준의 보컬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니까요.
Q. 뮤지컬 영화를 처음 보는데 위대한 쇼맨부터 시작해도 괜찮나요?
A. 제 경험상 이 영화는 뮤지컬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기 좋은 작품입니다. 음악이 귀에 잘 들어오고 러닝타임도 105분으로 부담이 없습니다. 저도 이 영화 이후로 뮤지컬 영화에 입문했으니, 시작점으로 손색이 없다고 봅니다.
Q. PT 바넘이 실제로는 나쁜 사람이었다는데, 영화를 즐기면 안 되는 건가요?
A.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과 영화를 즐기는 것은 충분히 병행이 가능합니다. 실존 인물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유지하면서도 영화가 만들어낸 서사는 따로 소화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 영화를 통해 해당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오히려 그 이후로 영화를 보는 눈이 조금 더 넓어진 것 같습니다.
Q. 'The Greatest Show'가 자존감 올리는 데 진짜 효과가 있나요?
A. 저는 자존감이 바닥일 때마다 이 곡을 찾아 듣는데, 직접적인 위로의 가사보다 음악적 에너지 자체가 기분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라 효과가 오래 갑니다. 비주류였던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당당해지는 서사가 음악에 담겨 있어서, 가사를 이해하고 들을수록 더 강하게 체감됩니다.
결론
《위대한 쇼맨》은 저에게 단순한 인생 영화를 넘어서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준 작품입니다. 한 편의 영화가 장르 입문을 이끌 수도 있고, 미디어를 보는 시각을 다듬어줄 수도 있다는 걸 몸소 겪었습니다. 실존 인물 논란이 있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지만, 그 사실이 영화가 전달하는 감동을 무효화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분이라면 사운드가 좋은 환경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OST를 먼저 접한 뒤 영화를 보는 순서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미 본 분이라면 유튜브에서 휴 잭맨의 리허설 비하인드 영상을 한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그 영상을 보고 나면 영화의 감동이 한 겹 더 쌓입니다.